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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첫 보도' 전직 일본인 기자 "나쁜 역사 반복 안 되게"

By Yonhap

Published : May 16, 2018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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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역사를 직시하고 다시는 그런 인권  피해 가 없도록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위안부 할머니 증언을 기사화했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59·植村隆) 가톨릭대 초빙교수는 5·18 추모 분위기 무르익은 15일 김용근 민족교육상 수상을 위해 광주를 찾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사회부 기자로 재직했던 1991년 8월 11일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일본에서 처음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명을 건 증언이 잇따랐고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최초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았다.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는 15일 광주학생문화회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에무라 다카시(59·植村隆·사진 왼쪽) 가톨릭대 초빙교수에게 제24회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서 최초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았다.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는 15일 광주학생문화회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우에무라 다카시(59·植村隆·사진 왼쪽) 가톨릭대 초빙교수에게 제24회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연합뉴스)



일본 내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우에무라의 기사가 한일관계와 일본의 이미지를 악화시킨 '날조 기사'라는 공세를 폈다.

우에무라 교수는 우익의 위협 속에 고베 쇼인(松蔭) 여자학원대학 교수 임용이 취소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홋카이도 호쿠세이(北星)학원대학의 비상근 강사 시절에도 폭력과 협박으로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을 굽히지 않았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우에무라 교수는 재일동포 선배로부터 1980년대 한국의 정치 격변 상황을 듣고 한국 특파원이 되고자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1987년 특파원 시절 6월 항쟁을 지켜봤고 1980년 광주학살과 관련해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 사형 선고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고도 했다.

그는 "1997년에는 내가 과거 구명을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소식을 1면 톱 기사로 내보내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에무라 교수는 2016년부터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서전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를 출간했다.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는 이같은 활동과 공로를 인정해 이날 광주학생문화회관에서 우에무라 교수에게 제24회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수여했다.

김용근 민족교육상은 일제 강점기 평양 숭실학교 재학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졸업 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3년여 옥고를 치른 석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과 제자들이 제정한 상이다.

해방 이후 교사로 활동하던 김용근 선생은 교직을 떠난 후 1980년 6월 5·18과 관련해 지명 수배 중이던 제자들을 자택에 숨겼다는 이유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 6월을 선고받기도 했으며 1985년 타계했다. (연합뉴스)